다큐멘터리

넷플릭스 다큐영화, 사카라 무덤의 비밀

정보멘토리 2022. 1. 2.



안녕하세요, 역사멘토리입니다.
제가 오늘 리뷰하게된 역사는 이집트입니다.
20년도에 넷플릭스에서 이집트 다큐영화로 사카라 무덤의 비밀이 공개되며, 언론에서 엄청난 발견이라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기사로 내었습니다. 인간이라면 열광할 이집트 역사의 한 부분이라 흥미를 감출 수가 없을 정도죠. 이집트의 고대 문명은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사카라에는 수많은 이집트 문명의 유물과 석조 피라미드가 발굴되었지만, 아직도 사막에서 발견되지 않은 유물과 피라미드가 많다고 알려져 있고, 현재에도 조사와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카라 무덤의 비밀>에서는 이집트 고 왕국 제5왕조 왕실 사제였던 와흐티에의 묘로 추정되는 피라미드 무덤이 발견으로 시작됩니다. 현지에 있는 이집트 발굴단이 무덤에서 유물을 발굴하고 무덤에 새겨져 있는 상형문자를 해독하며 이루어지는 작업을 넷플릭스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역사다큐라고 하면 굉장히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제 주변에서는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다큐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집트의 역사에 관심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을 볼 때 무덤의 발굴 시점과 외부 사막의 현장 발굴 시점 두 가지로 나뉘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게 주의해야합니다.


와흐티에 무덤은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모래가 가득한 사카라의 사막에서 우연히 찾게 되는 일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고대 왕국 시기에 거주지와 물이 나있는 강의 위치를 통해서 무덤이 있을 만한 곳을 지정해 주변부터 땅을 파기 시작함으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아직도 밝혀진 게 많이 없어 베일에 싸인 문명이라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조사부터 시작해서 발굴까지 이뤄지는 과정을 정말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발굴하는 것은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에 다음 시간에 써보기로 하고 한다.

와흐티에 무덤은 부바스테이온 네크로폴리스 동쪽 절벽 옆에 있는 가장 오래된 돌피라미드 조세르 왕의 고대 묘지 계단 피라미드와 1km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사카라 사막에서 2018년 봄에 발굴이 시작되었다라고 하는데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영화에서는 서쪽 사막이라고 한다. 이는 어느 지역에서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된다. 본격적인
와흐티에 무덤 내부의 발굴은 이슬람교의 단식 기간으로 알려진 라마단 기간 4주 전에 치러졌다고 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고 라마단 성월이 시작되는 6주 후에는 발굴 자금이 바닥나기 때문에 유물을 발견하지 못하면 지원이 끊기게 되는 상황이라 전전긍긍하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다음 시즌에 현장에 투입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발굴을 이어갈 자금을 확보하려면 큰 유물을 발견해야 한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발굴을 하려고 노력하는 걸 영상으로 볼 수 있다. 그나마 정부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첨단장비로 위대한 문명을 조사와 발굴하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모래와 흙을 파내는 호미와 곡괭이 같은 도구와 발견될 유물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섬세한 작업은 붓으로 통해 이루어진다. 발굴단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발견 되는 도구들로 발굴을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도구들로 4,400년간 아무도 침범하거나 도굴을 하지 않았던 무덤이기에 처음 파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와흐티에 무덤을 탐사, 발굴하는 소규모 이집트 발굴단의 인원은 감독 포함 수백 명으로 추정된다.사브리 씨라는 사무국장이 모든 진행을 지휘한다. 무스타파 주임은 모든 작업자를 관리, 무함마드 유셰프는 현장감독으로 일꾼들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발굴인원은 상당히 많고 지휘체계가 복잡하다. 영상에서 보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삶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아버지가 살아오시면서 가지고 있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아들이 물려받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인처럼 자부심을 느끼고 역사에 대한 발굴 작업을 하였으면 한다. 아직도 이룰 수 없는 꿈으로 간직하며, 다큐멘터리를 보고있지만 어렸을 때 부터 꿈이 고고학자였기 때문에 이런 다큐영화를 보면 너무 흥미롭다.
가리브 씨가 먼지 더미 속에서 하마다 씨를 부르며 뭔가 보였다며 부르는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고대 묘역에서 무덤을 찾다가 붓으로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내며 찾은 것은 사자의 여신상이었는데 일생일대의 유적을 발견했다고 칭송한다. 손상이 하나도 없는 무덤을 발견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무덤에 어떤 유물이 묻혀있었는지만 찾아도 누구의 무덤인지 짐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이집트 왕국에서는 높은 고위급의 직급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무덤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굴하다가 찍은 영상을 보는데 정말 엄청 거대하고 컬러풀한 석조상을 볼 수 있었다. 몇 천년전 인데도 화려함이 돋보이는 석조상은 정말 엄청났다. 대대적으로 엄청나게 큰 유적이기 때문에 당대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와흐티에 무덤이라고 밝혀지기 전까지는 무덤양식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는데 무덤에 칠해진 채색과 명판, 다양한 조각상이 개인 묘에서 나오는 것은 이집트에서 처음 발견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일반적으로 무덤이 발견되면 고대에 파놓은 매장용 수직갱이 하나 나오게 되는데 때때로 다른 무덤이 나온다고 한다. 와흐티에 무덤에는 4개의 수직갱의가 모래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무덤의 주인이 아흐티에 라고 알려졌을 때는 이 사람에 관해선 알려진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조사를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상형문자를 해독해야만 무덤이 주인이 어떤 사람이고 이런 무덤을 가질 수 있었는지 밝힐 수 있어 하나의 무덤을 발굴하면 나오는 상형문자를 통해 이야기를 조사하는 게 가장 먼저다. 조사가 마무리 되면 수직갱도를 파기 시작한다. 조사는 3개월 이상 걸렸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시간 활용을 한다. 한 번 무덤이 발견되면 근처에 다른 무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조사하는 동안 새 무덤을 찾으면서 와흐티에의 일가 이야기를 기다린다.
과연, 와흐티에가 묻힌 무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


현장 발굴 현장 시점

사카라 동쪽 절벽 지역에 동물을 숭배하는 큰 사원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전이 부바스테온이다. 바스테트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이다. 모성과 아름다움, 사랑의 여신으로 고양이나 고양이 머리를 한 여성으로 보인다.그곳에서 발견된 크고 작은 고양이 석조상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큰 고양이 석조상을 엑스레이로 찍었더니 그 안에 새끼 고양이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이집트의 신들은 한 가지의 면보다 서로 정반대 되는 양면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바스테트 여신 역시 평온함과 공포의 양면을 지니고 있는데 고양이다 보니 상냥하고 장난기가 많은 것으로 평온함을 나타낸다. 또 다른 여신 상으로는 암사자가 있는데 공포스러운 면이 있어 복수와 역병의 여신이라고 한다. 이집트에는 수 많은 동물을 신으로 숭배한다. 많은 신을 숭배할 수록 삶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걸 현세가 아닌 사후세계를 위함이기 때문에 동물마다 지니고 있는 신의 의미마다 달라 결코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걸 세크메트로 통해 알 수 있는데 BC 500 - 300년 경으로 알려진 유약 도기상이 발견되었다. 세크메트는 이집트의 도시 멤피스의 최고 신 프타하의 아내로, 암사자의 머리를 지닌 여신. 사자처럼 가공할 만한 힘을 지닌 전쟁의 신으로 ‘강력한 자’라는 칭호를 갖고, 전쟁과 역병의 여신이라 여겨졌다. ‘인류 전멸의 신화’라 불리는 고대 이집트의 이야기에서, 인류가 라 신에 대항하여 모반을 꾀하자 세크메트가 파견되어 지상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술을 너무나 좋아해서, 대지에 뿌려진 맥주를 다 마시고는 엉망으로 취한 덕분에 인류는 전멸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도기상 근처에서 또 다른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하나의 목관으로 보여진다. 채색 미라 관 BC 800 - 600년으로 추정되며, 머리가 서쪽을 향해있었다. 석관 위에는 붉은색과 검은 색의 컬러로 사람 얼굴을 형상한 그림과 숭배하는 신들이 그려져 있었다. 관의 뚜껑을 여니 검은색의 미라 한 구가 나왔다. 여자였는데 마치 불에 탄 것 같이 검었다. 아마 베이킹소다와 소금을 혼합한 나트론을 사용해 건조 하는데 화학반응이 일어나 생길 가능성도 있었다. 사카라 무덤의 비밀에서는 한 시즌에 몇 개 찾을까 말까한 유물들을 30초마다 발굴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사카라 사막 발굴지 중 현존에서 가장 오래되고 싶은 수직갱도가 와흐티에 무덤 서쪽 10km 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부바스테이온이 건설된 지역에 2천년이란 이집트 역사를 거치며 개방된 고분이 많았는데 사제들이 이런 제물을 고분에 가져가 대량으로 매장을 한 곳에서 발견된 것 들이라고 보여진다. 깊은 지하로 내려가 발견 한 것은 아미포에 돌돌 싸매져 있는 수많은 동물들의 미라 였다. 왜 이렇게 한 곳에 많은 동물 미라가 있었을까? 천에는 어떤 동물인지 상징하는 형상화가 그려져 있다. 어떤 동물을 미라로 만들어졌을지 알기 위함일까? 사제들은 마을에 사는 집집마다 고양이 사육 하청을 맡기는데 나중에는 그 고양이를 신에게 재물로 바친다고 한다. 동, 도자기 유리 등 다양한 재질로 된 고양이 조각상을 바치기도 하는데 살아있는 피의 재물을 바치면 나무나 돌로 만든것 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황금색 털을 가진 새끼 사자 미라라고 밝혀졌다. 사자를 통해 고대 이집트 종교, 경제 문화를 이해하는데 교감하는 방식을 보는 관점도 달라질게 확실했다. 하나의 동물 미라의 발견으로 역사의 한 줄기가 더 생겼다는게 너무 신기 했다.


라마단 3주전에는 BC 600년 후기 매장 묘가 발견 되었다. 2,600년이 넘었다. 유골과 같이 발견된 세네트 놀이라는 체스 장난감도 같이 있었는데 발견된 유골이 어린아이였을까? 다른 위치에서 절벽을 발굴하다 구멍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하나의 관과 여러 개의 유골이 발견 되었다. 바로, 묘실이었다. 입구는 하나가 아니라 두개 였던 거로 추정된다. BC 1295 - 1186년경 조각한 나무관이다.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위치에 유골이 떨어져서 발견되었을까? 지난 역사는 우리가 알길이 없다. 어떤 이유로 시신들이 묻혔을지 정말 궁금하다.


외부 현장 발굴에서 훌륭한 부조가 발견되었는데, 람세스 시대 것으로 람세스 2세의 카르투슈로 명백했다.
람세스 시대 귀족 석회암 조각상 BC 1279 - 1213 년경 그 시대의 양식을 또 찾았는데 3,300년이 넘은 유물로 추정된다. 부조와 조각상을 맞춰봤더니 퍼즐처럼 딱 들어 맞았다. 사막 모래 아래 뭔가 있다는 확신이 들어 조각상의 주인을 찾기로 한다.

제5왕조 에서 람세스 시대까지 천년의 긴 공백을 그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다. 하지만, 사카라 사막안에는 여러 왕조의 시대가 복합적으로 엉켜 있으며, 이걸 밝혀내는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집트인의 숙제라고 생각된다.


와흐티에의 무덤 양식
2415 - 2405 BC


무덤 내부의 상형문자로 번역을 통해 조사를 하는데 상형문자를 번역하는 데에는 몇 가지 규칙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쓰거나, 거꾸로 상형문자가 새겨지곤 하는데
이 무덤에서는 수평으로 문자가 새겨져 있다가 수직 글귀도 보인다. 가장 먼저 상형문자의 시작 시점을 먼저 찾는데 그 중점은 새를 찾는 게 제일 빠르다. 새가 오른쪽을 향하면 그 방향부터 해독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해독한 바로는 와흐티에, 정화된 왕실 사제, 신성한 영지의 감독자, 신성한 배의 감독자, 위대한 신과 함께 숭배되었다 였다.
처음에 사제라는 가정하에 해독을 시작한 것인데 이집트 고왕국 제5왕조 시대의 사제는 관리 중에서도 최고위층으로 알려져 있고, 왕과 국민, 왕과 신의 중간자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훌륭한 무덤을 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무덤에는 자신의 이름과 조각상을 곳곳에 새기고 세워놓았는데 무려, 그 조각은 55개이라고 한다. 아마도 본인을 찬양했던 게 분명하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자신의 삶을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사후세계에서도 멋지게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무덤을 멋지게 꾸미는 것이었다. 와흐티에는 ' 난 강력하고 중요한 사람이다' 로 사후세계로 떠나면서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고스란히 가져가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집트 무덤 내부 벽면에는 훌륭했던 업적과 활동을 그림으로 새겨 놓는데 와흐티에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활동을 그림으로 남겼다. 일상생활의 다양한 장면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모습, 사후세계까지 남겨 놓을 정도로 욕심 많은 남자라고 보인다.본인이 누렸던 생활 모두를 사후세계로 가져가고 싶어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후세계에 가기 위한 준비가 마쳤어도 사후세계에서 신성한 재판을 통과하여야 선택받은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무덤 지상에는 제실을 지었고 수직갱도를 만들어 지하 침소에 연결해 거기에 미라를 묻는다, 육신을 보존하면 영혼이 부활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의 제실은 컬러풀함이 보일 정도로 아름답게 꾸미게 되는데 영원을 누리고 싶은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내었다. 위비라는 가짜 문도 세우는데 영혼이 드나드는 문으로 영혼의 반은 사후세계로 가고, 나머지 반은 무덤에 머무르다 누구가 무덤에 아와 이야기를 하면 들을 수 있게 했다. 무덤의 전체는 부활을 위한 하나의 장치로 하나의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무사히 이동하여 화려한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역할로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라마단 6주전에 시작된 벽체 조사에서
이집트 고고학자들의 개인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특별한 무덤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중 하나로 많은 수수께끼가 숨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개인 묘라고 보이지만 가족묘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벽면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 무덤의 주인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인물들이 눈에 띄는데 와흐티에와 모친, 네 자녀와 부인이다. 하지만, 몇몇의 인물이 보이지 않는데 그 인물들은 형제이다. 무덤에서 와흐티에의 이름이 과하게 언급이 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음모의 냄새가 풍겨진다고 말하였다. 그 수수께끼를 풀어줄 단서를 찾았는데 첫번째 위비 벽면에 그려 진 것은 다소 특이했다. 일반적으로 남편과 아내를 그리는데 와흐티에의 어머니가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어머니와 결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게 조사한 결과 이름을 다시 새긴게 분명했다. 와흐티에라고 알고 있던 조각상의 이목구비를 만져보면 무덤 내의 어느 조각과도 달랐기 때문에 와흐티에가 무덤을 가로챘다고 보인다. 처음 부터 이 무덤은 와흐티에를 위한 무덤이 아니라 형제의 무덤을 가로챈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다양한 단서와 가설로 추측하고 있다. 동쪽 벽에 형제에 대한 언급은 있는데 벽체에는 보여지는 그림 조차 없다. 와흐티에가 노래를 바치며 내 형제의 영혼을 위하여라고 적혀져 있어 형제로 부터 훔친 무덤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었다. 형제의 무덤을 훔친게 사실화 된다고 가정을 해보면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후세계에서 신성한 재판에 통과 되기 위한 과정 중에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등 몇 가지 재판의 절차에 있어 다른 세상가서 벌을 받지 않을까 ?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쪽 벽에서 해독한 문자에서 '나는 심판관들과 함께 있다' 라는 것은 자신을 심판하는 사람과 같은 위치에 올려 놓았다는 증거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무죄로 판결 할 수 있기 때문일 것 이다. 그래서 와흐티에는 벌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닥에는 무덤에 관한 온갖 의문과 수수께끼를 해명할 수 있는 단서가 발견 될거라고 생각했다.



라마단 4주전이 되서야 벽체조사가 마무리되고 내부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금이 간 무덤의 천장이 있어 최종적으로 안전 진단을 실시 하였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최근 60 - 70년간 새로운 발굴이 없었기에 대단한 발굴 작업이라고 생각되었다.조금 더 발전된 현대 기술력이 성장해 생물 고고학으로 시신자체를 연구할 수 있어 유골을 분석해 생전에 앓았던 질병 까지 알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수직갱도에서 미라가 발견 된다면 정말 흥미로울 것 이다. 가장 먼저 입구에 있는 근처 갱도 두 개를 먼저 파내기 시작하였다. 두번 째 갱도에는 도자기 파편이 나왔는데 깊이가 60c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첫번 째 갱도는 깊이가 좀 더 깊었는데 파내다가 진흙 벽을 발견했고 동쪽으로 나 있었다. 동쪽에 있는 벽돌을 빼내자 나무로 된 관 뚜껑을 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한 명은 20살 이하, 다른 한 명은 18살 이하 아이, 6살의 어린아이 유골로 추측 할 수 있었다, 하나의 관에서 세명의 아이가 동시에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번 째 갱도에서는 2M까지 파고 들어갔을 때 한 명 이상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성인 여성 두명과 어린이 총 세명이다. 한 명은 와흐티에 어머니로 50대로 추정되고, 또 한 명은 나이가 30대로 추정하여 부인일 가능성이 있다. 어린이로 추정되는 유골은 나이 미상으로 넷째아이로 추정되었다. 하나의 갱도에는 남자들의 유골만 발견되었고, 또 하나의 갱도에는 여자들의 유골만 발견 되었다. 갱도를 파낼 수록 의문이 생겼다. 묘실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길다란 구멍에 뼈만 계속 발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골이 발견 되면 관에 들어있거나 근처에 관이 있기 마련인데 뼈를 급하게 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와흐티에 유골을 찾기 위해 네번 째 갱도를 파내기 시작하였다. 깊이 파내고 남쪽으로 벽이 하나 나있는데 그 곳에서 하나의 관이 발견 되었다. 무덤은 화려하게 꾸몄는데 갱도에서 묘실이 두개 정도 밖에 없다는게 이상했다. 커다란 묘실에 화려하게 꾸며있어야 하는데도 간소하게 나무관이 전부였고 시신을 미라로 만들지 않았다. 치아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존되어있었다. 이제 와흐티에가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낼 차례이다. 와흐티에의 유골에서 여성적인 면모가 보여졌는데 아주 섬세했을 것 같다고 한다. 35살정도 되었는데 두개골이 두꺼운 부분이 있다. 이 징후로는 뼛속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할 수 있는데 무릎에서도 어떠한 질병을 앓고 있는걸 발견 할 수 있었다. 피가 부족해 뼈 단면에서 부어있는걸 보았고 빈혈을 앓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온 가족이 말라리아를 앓다가 사망했다고 보여졌는데 결과는 밝혀지 않았다. 와흐티에 가족의 죽음에 관한 가설이 입증되면 역사상 가장 오래된 말라리아 기록이 될 것 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집트의 무덤을 보며 현세에서 이렇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 무덤에 묻혀진 사람들의 현세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세에 그렇게 살고 싶어 그들의 꿈을 무덤 벽에 새겼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화려하고 위대한 사원과 조각상을 보며 역사속의 모든 것은 완벽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역사를 자주 오해하곤 한다. 아마 지금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남에게 보여지는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것처럼 비슷하게 보인다. 이 사람들도 우리랑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벤 투비미스 대심판관의 무덤이 발견된다. 이를 끝으로 사카라 무덤의 비밀이 끝나게 되는데 이 발굴단은 3,100여개의 이상 독보적인 유물을 찾았다고 한다. 이는 후세의 기록과 천년 이나 차이 나기 때문에 엄청난 발견이 되었다. 과연, 이집트의 역사의 시작은 어디부터 이며 그 들이 살았던 세상은 어땠을지 감히 평가 할 수 없다. 앞으로 다른 역사가 발견 된다면 무한대의 역사가 생성될 수 있으며 현대에서 발견이 되거나, 후대에 발견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역사는 알면 알수록 정말 흥미롭다. 앞으로도 이러한 역사적인 발굴에 대한 다큐가 제작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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