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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 세계 4대문명 이집트의 시작

정보멘토리 2022. 1. 8.

 

안녕하세요, 역사멘토리 입니다.

오늘은 불가사의 하다고 알려져 있는 세계 4대문명 그 중 하나인 이집트를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이집트는 아시아권의 선사시대가 시작하기 전에 먼저 생성된 문명입니다.

 

기원전 5000년 ~ 기원전 332년까지 무려 5천 년 가까이 시대를 살아왔던 이집트문명인데요.

이집트는 나일강 유역에서 일어난 농경 문화와 고대 문명으로 거대한 국가 권력 아래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상형 문자를 사용하며 측량술, 천문 역법 따위의 과학 기술이 발달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시아권은 아직도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어떻게 이집트는 다양한 문화와 문명의 발달로 

3천년 가까이 권력을 누리면서 시대를 살아왔던 것 일까요?

 

이집트 문명의 시작

 

이집트 문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3천년의 기간동안 제 30 왕조라는 시대 구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거대한 나일강이 선사한 찬란한 축복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약 8천년 전 나일강에서 부터 시작된 문명으로부터 발생한 초기 이집트는 전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나일강이 하나 있습니다. 매년 여름 시계처럼 정확한 시기에 맞춰 홍수와 범람이 일어났습니다. 수 천년동안 비옥한 강가에서 반복적으로 농사를 짓고, 고대 지중해 일대에서 가장 부유한 식량원을 제공받았다고 합니다. 서쪽으로는 광대한 사막이 이어져있고 북쪽과 동쪽은 바다로 둘러싸인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구 곳곳에서는 많은 씨족 집단으로 유럽 대륙을 떠돌고 있을 때 나일강 하류에서는 이미 문명의 새싹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문명의 발달과 쇠퇴는 나일강의 컨디션에 따라서 좌지우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6,000년 경 선왕조가 형성되었습니다. 메네스가 이집트를 통일하면서 본격적인 이집트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의 통일 왕조는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시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제 1 왕조부터 이집트 문명이 시작입니다.

기원전 4천년 경 이집트에는 북쪽에 위치한 하이집트 왕국과 남쪽에 위치한 상이집트 왕국으로 나누어져 왕국이 생겨났습니다. 전갈 왕이 통치하는 원왕조시대와 나르메르가 통일한 초기 왕조 시대 ( 제 1왕조 - 2왕조 ), 그리고 권력이 강력해진 3왕조 까지 고왕조 시대로 구분됩니다. 고왕국 시대는 제 3왕조 부터 제 6 왕조 시기를 말합니다. 이후 시대는 혼란기인 중간기와 중왕조, 신왕조 시대가 지나고 로마와 이슬람계, 서방의 국가들에게 점령 당하는 역사가 반복됩니다. 

 

초기 왕조 시대의 1왕조는 첫 통일 후 초기왕조를 수립한 나르메르는 상이집트(원왕조)를 통치하던 인물로 하이집트를 제압하며첫 통일왕조를 세우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나, 내부적으로 불안적인 통일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내부적으로 크고 작은 혼란을 겪던 시기 였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국가를 안정 시키려고 했던 시기입니다. 통일 시기는 기원전 2686년 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아시아권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문명이 형성 되기 훨씬 이전인 빗살무늬 문화권으로 신석기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보니 이집트 역사가 얼마나 이른 시기에 형성이 되었는지 정말 까마득합니다. 이집트를 통일시켰던 나르메르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은 호르-아하가 2대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하이집트에 자리잡고 있던 활의 민족인 누비아인 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혼란스러운 이집트를 안정화 시키는데 노력하였습니다. 그 다음 주목할 파라오로 5대 왕 덴은 동굴안에서 세력을 세력을 키워오던 혈거인을 토벌하여 초기 왕조 파라오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하지만 7대 파라오인 세메르 케트 기점으로 부터 초기 왕조의 큰 재난이 일어나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1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를 시작으로 2왕조의 대부분의 왕들의 기록이 많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왕조는 1왕조 말기에 재난으로 인해 혼란해진 민심을 2왕조의 2대 파라오 레네브와 3대 니네체르가 우상 숭배였던 황소신을 섬기고 축제를 열어 이로 인해 백성들의 민심을 안정시키고자 하였고, 반란 세력들을 무력으로 진압해 파라오 (이집트 왕)의 입지를 다지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7대 파라오 세트-페브리센 부터 초기 왕조가 서서히 분열이 되려고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내부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난무하지 않았나 추측을 해봅니다. 

 

9대 파라오 카세캠위 재위 시절에 친히 군대를 이끌어 하 이집트와 네케브 지역의 세력을 진압하였고, 반란을 주동하기도 했던 4만 7,000 여명을 처형시켜 파라오의 권위를 높혔고 이집트 내부를 안정시켰습니다. 2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카세켐위는 자신의 딸과 혼인시킨 사나크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사나크테가 왕위에 오르면서 3왕조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3왕조는 해외 원정과 개발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며 이집트 최초 융성기로 피라미드 시대라고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동셍인 조세르와 함께 나일강 위쪽에 위치한 시나이반도를 광산으로 개발하여 구리와 고대보석으로 손꼽히는 터키석을 채광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서 큰 성장을 이뤄내었습니다. 이집트의 고왕국은 대를 거치면서 선대의 왕들 업적을 발판으로 삼아 나라의 안정과 부를 쟁취하게 되었고, 파라오의 권위로 알려진 사카라 계단 피라미드가 건축되는데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3왕조는 세셈케트, 카바, 후니 파라오를 지나 4왕조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4 - 5왕조는 최고의 전성기로 손꼽히는데 4왕조 1대 파라오였던 스네프루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위를 자랑하고 싶어했고 이를 나타내기 위해 굴절피라미르돠 붉은 피라미드를 건설하였습니다. 아들인 쿠푸왕 대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로 기자 대 피라미드가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3대왕 제데프레 시절에 와서야 거대한 피라미드가 건축되었습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설립시기는 기원전 2550년 경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문명 중 하나인 황하문명이 형성되기 500년 전 유적이기 때문에 시기나 규모를 따졌을 때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정도로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에도 카프레 파라오에 와서 136.4m 규모로 쿠푸왕의 기자 대 피라미드 옆에 건설하였습니다. 파라오의 권위를 뽐냈습니다.4왕조는 사치와 향락의 시대로 최대 전성기로 지나갔으며, 5왕조도 마찬가지로 사치와 향락의 시간을 보냈으나 파라오의 몰락과 지방 세력 귀족 계층의 권력이 강화 되는 시기입니다. 6왕조 1대 파라오였던 테티는 반대 세력이었던 2대 파라오 우세르카레에게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빼앗긴 것도 잠시 테티의 아들인 페피1세 에게 어린 나이에 파라오에 즉위하여 파라오의 권위는 완전히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귀족의 권위가 상당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귀족들이 어린나이의 파라오를 마음대로 다루게 되었고 도시 아비도스의 어떤 귀족은 자신의 딸과 혼인시켰습니다. 또한 왕비인 웨레트잉테스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5대 파라오인 페피 2세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는데 황금처럼 찬란하고 융성했던 이집트 제국은 페피 1세를 기준으로 파라오의 권위가 몰락되었고 페피 2세가 사망함으로 6왕조 중앙정부는 기능을 상실하게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생명줄인 나일강에 기근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졌고 그로 인해 귀족들이 이러한 시기를 기회 로 삼아 권력을 잡아 각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관리들이 스스로 왕을 자처하며 독립하는 이집트판 춘추시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도 중앙정부는 끊이없이 왕조를 이어가지만 힘이 약하기에 봉건제후로 70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70명의 파라오가 난립한 혼란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통일왕조는 붕괴되기 시작하여 이를 기준으로 중간기라고 부릅니다.

 

이 때 등장했던 강성한 왕조로 헤라클레오폴리스 (수도) 9왕조 와 테베 (수도)의 11왕조인데요. 이 두 왕조가 세력을 키우며 대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9왕조의 건국자인 케티1세는 성격이 매우 포악해 무력으로 백성들을 탄압하며 극악무도한 통치를 하여 민심이 흉흉해지며 반란이 일어나 처참히 살해 당하게 되고 맙니다. 네페르카레 7세가 뒤를 이어 9왕조의 파라오로 올라서게 되는데 11왕조 인테프 1세는 서로 둘 다 분열 된 이집트를 통일 시키겠다는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군사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하였습니다. 7세는 약소국이었던 11왕조를 제압하였고 나일강 상류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귀족 ( 안크피티, 호텝, 옐레판티네) 와 연합하여 군사를 일으켜 11왕조 수도인 테베를 선제 타격 시켰습니다. 이에 반기를 들어 9왕조 군대에 맞서 11왕조 인테프 1세는 공방전을 벌입니다. 9왕조의 기근이 생김으로 인해 연합군을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며 나라를 안정시키는데에 더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한 편으로 11왕조에서는 혼란을 기회로 삼아 남쪽에 있는 지역을 점령하여 세력을 확장하였고, 인테프 2세 시기에 와서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펼쳤습니다. 나일강 제 1폭포를 점령해 누비아인들을 제압하여 강력한 정부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약소국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게 됩니다.

한편 강성했던 9왕조는 케티 2세 시절 아시아인들의 침공으로 곡창지대였던 삼각주 지역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를 안 11왕조는 군대를 이끌고 대규모 원정을 떠나게 됩니다. 9왕조 수도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원정길에 있는 소국가를 제압하여 진군을 하였습니다. 9왕조와 전면전을 치뤄 판세를 바꾸었습니다. 11왕조는 승세를 이어나가는데 이후 후대 파라오 시절에도 정복사업을 지속하였고, 2차 원정을 떠나며 그 과정 또한 소국가들을 완전히 병합 시키며 진군해 나아갔습니다.

9왕조는 삼각주를 침공하는 아시아인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과정에서 11왕조가 북진을 하며 나일강 하류를 장악하였기 때문에 양쪽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며 크게 쇠퇴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9왕조는 막을 내리고 10왕조로 시대가 바뀌게 됩니다.

 

이후 11왕조가 점령한 아비도스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 큰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반란군을 진압하였고 그 배후에는 10왕조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두 번 다신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라의 안정과 재정비를 장기간에 걸쳐 하였고, 더 나아가 나일강 위쪽에 있는 아비스코와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점령하였습니다. 반란의 주동했던 10왕조를 정복하기 위해 수도로 쳐들어가 함락시키고 두 왕조를 통일하여 통일왕조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제 30왕조까지 나아가려면 한참 이나 더 남았는데요. 

이후 리뷰에서는 이집트의 멸망원인, 왕조에 대한 모든것, 시대구분의 제 1왕조 부터 30왕조까지를 차례대로 

작성할 예정이니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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